부모가 함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고전 읽는 가족>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모도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아이 홀로 가는 고전읽기는 또 하나의 학원 수업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끝없이 “공부해라” 하는데도 변화가 없는 것은 부모가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는 TV나 인터넷을 끼고 살면서 아무리 그렇게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이들을 공부하게 하고 싶다면 “공부해라”가 아니라 “공부하자”라고 해야 한다. 부모가 책을 펴야 아이들도 책을 편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고전을 읽기 바라면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한다. 그 경험과 몸부림을 공유해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꿈꾸는 가족의 공명(共鳴)이 실패하는 것은 이러한 공유가 없기 때문이다.

식탁을 [행복한 도서관]으로 만들자.

사실 부모가 함께 읽는 것은 단순히 모범을 보이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가족이 한마음이 되는 일이다. 부모와 자녀가 같은 책을 가운데 놓으면 마음을 나누고 지혜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주 가족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냥 자리에 앉기만 했다고 소통이 시작되지는 않는다. 공통의 주제(화제)가 있어야 한다. 이럴때 같은 책을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공통의 책이 인류의 고전이 된다면 더욱 더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된다. 생각해보라. 부모와 자녀가 함께 플라톤 앞에 서고 ,공자와 자리를 같이하고, 마틴 루터의 외침을 듣는다.

어떤 부모들은 ‘고전’이라는 무게 때문에 부담을 느낀다. 물론 고전이 만만한 책은 아니지만 문제의 근원은 사실 다른데 있다. 그 생각의 근원에는 부모는 자녀에게 꼭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부모는 선생이고 자녀는 학생이라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자. 우리 모두 고전 앞에서 학생이다. 40년의 지혜를 가진 학생(부모)와 15년의 지혜를 가진 학생(자녀)가 함께 공부하는 것이다. 고전을 식탁에 놓고 두 세대가 마음과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부모님은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니다. 많은 부모들이 이 부분에서 크게 실수하고 착각한다. 자녀들을 계속 어린애 취급하면서 명령하고 가르치려고만 한다. 청소년 자녀에게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자아가 강해지고 끝없이 “왜”라고 묻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올바른 이야기를 명령하고 가르쳐도 잘 듣지 않는다. 부모들도 그 시절에 그랬듯이 말이다.

청소년 자녀에게 부모는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요 선배가 되어야 한다. 함께 고민하는 벗이 되어야 한다. 함께 고전을 읽는 것은 그 면에서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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