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을 따라서

“Thus saith the LORD, Stand ye in the ways, and see, and ask for the old paths, where is the good way, and walk therein, and ye shall find rest for your souls…”(Jeremiah 6:16a)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예레미야 6:16상)

가장 분명한 옛 길 중 하나는 고전(古典)에 있다. 특히 책으로 된 고전에 있다. 인류가 남긴 의미 있는 발자국과 지식의 궤적들이 거기 담겨있다. 새 책들은 결국 고전의 재해석과 재구성이며, 새 책을 향한 최고의 찬사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 발견하게 해준 책’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새롭게 등장한 기술과 산업을 다루는 책이라면 새 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을 다루고 본질을 다루는 책이라면 새 책은 없다.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서양철학은 결국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베드로후서 1:24). 정말 새롭고 오래갈 것처럼 보이던 모든 것들이 결국 시들고 저문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그러나 고전의 옛길은 다르다. 세월의 비바람을 견디고 바위처럼 우뚝 서 있다. 때로는 그 사상과 논조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세월을 견디고 사람들을 변화시킨 책들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옛 길로 가야 한다. 옛 길은 뿌리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 새로 나온 책은 무수한 열매들 중 하나일 뿐이다. 뿌리가 없으면 열매도 없다. 연말연시마다 서점을 점령하는 자기 관리용 다이어리들의 기원을 알고 싶다면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의 자서전을 읽으면 된다.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을 모르는 사람은 현대 성공학의 사상적 기반을 모르는 사람이다. 로미오와 줄리엣(1597)은 어떤가? TV와 소설에 나오는 이루어질 수 없는 모든 사랑의 원형이 거기 있지 않은가?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정글 피버(1991)’나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8)’ 같은 영화의 비극적인 사랑은 캐플릿과 몬테규 가문에서부터 잉태되었다.

새 것에 대한 환상에 빠진 사람은 평생토록 남이 만든 매뉴얼만 읽다 끝난다. 그러나 옛 길을 살피는 사람은 뿌리를 보고 남다른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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